곧이라는 말은 참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느린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서로 마주 본 프란츠와 리시아가 양손을 맞잡았다.

 

프란츠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영애. 제가 춤에 익숙지 않습니다. 혹여나 발을 밟는 실수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리시아는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답했다.

 

“괜찮아요. 저도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니.”

 

그리고 춤이 시작됐다.

 

프란츠는 오랜만에 밟는 스텝에 어색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맞닿아오는 리시아의 체온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대화할 겨를도 없었다면 정말로 어색했겠군.’

 

다행히도 이번 음악은 느린 곡이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리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날 말이에요.”

 

“그 날이라면?”

 

“락투실에서 사냥대회가 있던 날이요.”

 

핑그르르-

 

리시아의 몸이 프란츠의 팔 안에서 한 번 회전했다.

프란츠가 당황한 것도 잠시 다음 말이 들려왔다.

 

“프란츠 공자께서는··· 혹시 그 날 흉터박이 곰이 사냥터에 출몰할 것을 알고 계셨나요?”

 

숨이 가쁜 듯 중간에 한 번 말이 끊겼다.

 

‘느린 템포의 곡인데···’

 

아무래도 리시아는 정말로 춤에 익숙지 않은 모양이었다.

프란츠는 그 모습을 의외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몰랐습니다.”

 

“케룬에 대해서는요?”

 

“우연히 알게되었을 뿐입니다.”

 

리시아가 잠시 그 붉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리고 곧 말했다.

 

“신기하네요.”

 

“무엇이 말입니까?”

 

하지만 프란츠의 반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그 모습에 프란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리시아의 양 뺨이 붉게 달아오른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열이 있으십니까, 영애?”

 

그 말에 리시아가 화들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순간 손가락 한 뼘 사이의 거리에서 두 사람의 눈동자가 긴밀하게 얽혀 들었다.

 

프란츠의 심장이 따끔거렸다.

 

‘뭐지?’

 

그리고 그가 그런 의문을 느낀 순간.

 

리시아의 스텝이 꼬였다.

 

뒤로 허물어지려는 그녀의 상체를 프란츠가 낚아챘다.

리시아는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다 간신히 한 마디를 꺼냈다.

 

“고마워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둘은 다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프란츠는 별다른 실수를 하지 않았다.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둘의 모습에 주변의 귀족들이 흥미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지만.

둘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못 차린 채로 춤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음악도 막바지였다.

다시 안정을 되찾은 듯한 리시아를 보며 프란츠는 문득 궁금해진 것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숙모분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영애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들려온 것은 다소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숙모께서는 여기 안 계세요.”

 

“그게 무슨···”

 

그러나 그 순간.

리시아의 몸이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저와 춤을 춰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녀가 자신의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

 

‘아.’

 

그제야 프란츠는 음악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다음 기회가 온다면 또···”

 

그러나 그가 그렇게 예를 차릴 때 리시아는 이미 멀어져 가고 있었다.

순간 애매해진 프란츠의 표정만큼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신기한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그 모든 이목을 뒤로 한 채 리시아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붉은 카펫이 손 아래로 빠르게 지나갔다.

 

‘말도 안 돼.’

 

혼자 이동하는 그녀를 발견한 남자들이 다가오려다 멈춰섰다.

두 자수정빛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리시아는 대연회장의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탁 트인 하늘이 그녀를 반겼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도 여전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두근두근-

 

이렇게 빠르게 심장이 뛰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결국 그녀는 복도를 좀 걷다 보인 벤치 위로 주저 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자 서늘한 손의 온도와 대비되는 얼굴의 감촉이 선명해졌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춤을 추려고 프란츠와 마주한 순간부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뛰는 것을 인식하자 얼굴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런 자신을 감추기 위해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던져댔다.

 

“신기하네요.”

 

그 말은 프란츠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리시아 자신한테 하는 말이었다.

 

왜냐면 정말로 신기했으니까.

처음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서 말이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리시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평생을 가문의 금지옥엽으로 살아온 그녀였지만, 그게 그녀가 어리숙하다는 뜻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리시아는 자기주관이 아주 뚜렷했고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그 머리가 명석했다.

 

그러니까.

그건 물론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했어.’

 

리시아는 처음 만난 남자에게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란츠에게는 먼저 시선을 마주친 것도 모자라 내기에 동참해달라고 그녀 쪽에서 먼저 요구했다.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토너먼트 참가자 명단을 확인했을 때.

그녀는 프란츠의 이름을 생략한 린에게 빼먹은 사람이 있지 않냐고 반문했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봄의 제전 기간 중 프란츠와 우연히 만났을 때.

그녀 스스로 먼저 프란츠의 행운을 빈다고 이야기한 것 역시.

 

그럴 이유는 없었다.

 

‘공자가 사라진 후···’

 

노파의 말을 떠올리며 혼자 고개를 흔든 기억.

만약 그녀가 프란츠를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또한 설명이 안되는 행동이었다.

 

결국 하나의 사실이 점차 명확해졌다.

 

한 때 리시아는 모든 일에는 필요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때때로 별다른 필요와 이유 없이도 생기는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는 새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언제부터였지?’

 

처음 락투실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흉터박이 곰을 같이 잡은 뒤에 그와 대화를 할 때부터?

아니면 봄의 제전 기간 중 우연히 야시장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면···’

 

토너먼트에서 자신의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리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손에 맞닿은 얼굴의 온도가 점점 제 자리를 찾았다.

흔들리던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 하나.

심장의 두근거림만이 끝나지 않았다.

 

두근두근-

 

점점 더 그 박동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리시아는 전과 달리 기분좋게 느껴지는 그 떨림을 붙잡고 싶었다.

두 자수정빛 눈동자가 맑게 빛났다.

 

그녀의 이름은 리시아 샤이란.

제국의 동부를 지키는 수호가문 샤이란의 차기 후계자이자.

 

자신의 감정에 당당한 한 소녀.

 

파앗-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끼고 있던 귀걸이가 살짝 빛났다.

 

 

***

 

 

[재밌군, 재밌어.]

 

아까부터 들려오는 그 말에 프란츠가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뭐가 재미있다는 거지?”

 

[그건 비밀.]

 

바스키는 에고소드답지 않게 유치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펜리르가 근엄하고 고고한 이미지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거기서 갈라나온 또다른 자아라는 바스키가 이런 모습인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좀 있다 밤에 제대로 대화를 해봐야겠군.’

 

프란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 돌아와 카엔과 아일린 공작부인에게 놀림을 당했다.

언제 리시아와 그런 인연을 만들어 뒀었냐고.

 

프란츠는 그 말에 당황하면서도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고 보니 뭐였지?’

 

그는 아까 리시아와 시선을 마주한 때를 떠올렸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린 것은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설마···’

 

리시아 샤이란에게 반하기라도 한 것인가?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리시아는 아주 어여쁜 소녀였다.

차갑고 고고한 이미지, 그리고 나이에 맞지 않는 성숙함을 생각하면 어여쁘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자신에게 당당한 그 모습이 귀여웠고, 동시에 재밌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리시아라는 소녀에게 반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갈 길이 멀었다.

그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연애감정같은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다 떠나 리시아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마치···’

 

그를 의식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프란츠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과거에 리시아 샤이란은 쭉 독신상태를 유지했다.

 

15살부터 가문 간 결합이 가능한 귀족의 세계에서 24살까지 독신을 유지하는 귀족 영애는 그 사례가 드물었다.

때문에 그녀가 남자를 피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

 

그런 리시아가 회귀를 한, 실제 정신연령은 그녀보다 10살이나 많은 프란츠를 의식한다는 것은 너무 얄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여겨졌다.

 

결국 프란츠는 고개를 흔들어 그런 생각들을 털어냈다.

 

리시아는 꽤 아름다운 소녀였다.

 

'아니, 사실은 꽤 정도가 아니지.'

 

그러니 막상 가까이서 본 후에는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떨린 것일 것이다.

그도 한 사람의 남자였다.

 

그리고 어느덧 연회가 끝나 있었다.

말 그대로 짧은 연회였다.

 

다시 흰 단상 위로 오른 황제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세 수호가문의 후계자들, 그들이 맞는 성년식의 짧은 연회를 이쯤에서 마친다. 그리고···”

 

음악소리가 완전히 멈췄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귀족들이 황제의 다음 말을 주목했다.

 

“프란츠 바실리. 토너먼트의 우승자는 단상 위로 올라오라.”

 

그리고 프란츠는 그 말을 듣고 마른침을 삼킨 뒤 단상 위로 향했다.

 

조용해진 귀족들을 바라보며 황제가 그 입술을 열었다.

 

“다들 프란츠 바실리가 토너먼트의 우승 보상으로 내게 독대를 신청한 것을 알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보상은 단 한 번에 불과하기 때문에 프란츠 바실리는 이미 그 기회를 썼다.”

 

연회장 내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직접 독대를 통해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본 바, 일찍이 이토록 갸륵한 보상을 요구한 우승자는 없었음이라.”

 

귀족들의 눈빛이 차츰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황제가 손짓하자 시종장이 서류 하나를 들고 왔다.

 

그 서류를 손에 들어올린 채 황제가 선언했다.

 

“잿빛늑대 바실리의 후계자, 프란츠 바실리는 황명을 받으라!”

 

프란츠가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선언했다.

 

“북부의 전선으로 향하고 싶다는 그대의 요청을 수락한다. 따라서 지금 이 시간 부로 그대를 이슈코펜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황명의 이름 아래 전선으로 가라. 기한은 2년. 그동안 전열을 다듬고 혹시 모를 적군의 침입을 방비하라. 내 바실리 공작에게는 이미 서신을 보냈음이다.”

 

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이슈코펜.

그 지역은 제국 북쪽 국경에서도 전방 쪽에 가까운 곳이었다.

 

지형이 험난하고 날씨가 혹독해 인구수도 별로 없었다.

그 곳의 수비대래봐야 300명이 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은 락투실과 최전방의 요새들을 잇는 보급지역.

즉 요충지였다.

 

그런 곳에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는 프란츠 바실리가 향한다는 것도.

15살의 소년을 그런 곳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하는 것도.

 

모두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황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 메튼은 앞으로 나오라.”

 

그 말에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기사단 정복을 차려입은 한 기사가 단상 위로 올랐다.

 

“기사 메튼을 이슈코펜 수비대의 부대장직으로 임명한다. 바실리 가의 차기 후계자의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아직 15살의 소년, 경험이 많은 그대가 필히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 모습을 보는 몇몇 귀족들의 미간이 좁혀졌다.

 

과연 우연인 것인가.

기사 메튼은 몇 안되는 2황자 테오도르의 측근이었다.

 

그런데 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시점에서 변방에 가는 모양새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황제가 프란츠를 2황자와 엮기 위해 오랜 심사숙고를 거쳤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그 전날밤 기사 메튼이 황제를 알현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렇게 다소 갑작스러운 소식 두 개가 발표된 이후.

연회가 완전히 끝났다.

 

황제는 들어왔던 후문을 통해 이미 연회장을 나갔다.

단상 위에서 흩어지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프란츠와 메튼이 눈짓으로 인사를 나눴다.

 

‘나중에 제대로 인사를 나눕시다.’

 

그렇게 눈짓하며 뒤돌아서는 프란츠를 누군가 붙잡았다.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프란츠는 얼굴에 의문을 떠올리면서도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그는 황제와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황제가 그를 향해 뭔가 내보였다.

 

“보아라.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은색방패를 든 기사의 형상이었다.

그 형상이 새겨진 하나의 은패를 황제가 오른손에서 흔들었다.

 

“황명을 대리하는 권리를 가진 패이다. 단 한 번, 이 패를 이용해 네가 원하는 수의 군사를 한 성에서 차출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모를 의견충돌에서 용이하게 쓸 수도 있겠지.”

 

프란츠는 굳은 표정으로 그 패를 보았다.

 

“이미 이슈코펜의 수비대장이라는 과분한 직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제게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황제가 말했다.

 

“증명해 보아라. 네 말대로 나는 네게 과분한 믿음과 권리를 줬으니. 그 기대를 증명해내는 순간 나도 네게 말할 것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받겠습니다.”

 

어차피 증명이 아니면 죽음뿐이었다.

굳은 각오를 드러내는 프란츠의 모습에 황제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재미있는 소식을 하나 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전쟁이 일어났더구나. 아마 내일쯤이면 이 곳에도 소식이 닿겠지.”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황제의 표정은 평온했다.

프란츠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쿠엔툴이 함락된 것은 예상 밖··· 하지만 북부에는 여전히 바실리가 있지. 짐이 딱히 손을 쓸 필요가 있겠느냐?”

 

프란츠가 허리를 숙였다.

 

“황공하옵니다.”

 

황제가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어찌 보면 바실리의 차기 후계자인 네가 황실이 파견하는 지원군같은 모양새가 되었도다. 물론 그 지원군의 가치를 어떻게 부풀릴지는 네게 달렸지만. 진정 전쟁터로 나아가겠느냐?”

 

“나아가겠습니다.”

 

그 순간.

프란츠의 오른손에 그 패가 쥐어졌다.

 

“그렇다면 나아가라. 황명이 네 뒤에 함께할 것이다.”

 

 

***

 

 

다음 날.

북부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에라체스에 도달했다.

 

새벽부터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 하며 프란츠는 막 황궁을 나섰다.

기사 메튼이 그의 수하들과 함께 그 옆에 섰다.

 

일행을 발견한 카엔이 다가왔다.

 

“프란츠.”

 

지난밤,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카엔은 내심 프란츠가 자신에게 별다른 상의도 없이 벌인 일들에 놀라면서도 서운한 눈치였다.

하지만 프란츠의 각오를 들은 후 상황이 그 정도로 급박했다는 사실을 곧 이해했다.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물론 카엔은 에라체스에 남는다.

토너먼트가 끝난 후이기도 했고 아일린 공작부인이 현재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공작부인은 최근 갑작스런 몸살 탓에 몸이 좋지 않았다.

물론 오늘 이 자리에도 나오지 못했다.

 

그러니 카엔의 결정을 프란츠는 백분 이해할 수 있었다.

 

“걱정마십시오. 곧 다시 보게 될 겁니다.”

 

물론 곧이라는 말은 참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하지만 카엔과 프란츠 둘 모두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잠시 황궁 옆의 황금용의 동상을 올려다본 프란츠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지금 보여서는 안 될 사람을 발견했다.

 

“영애···?”

 

어딘가 모르게 초조해 보이는 리시아였다.

괜히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던 그녀의 동작이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굳은 각오를 한 듯 그녀가 프란츠를 향해 다가왔다.

 

표정을 보니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그 옴싹달싹하는 입술을 주목하던 프란츠였지만.

 

“부디 행운을 빌게요.”

 

그 한마디를 남긴 뒤 리시아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아가씨- 같이 가셔야죠!”

 

이미 한 번 봤던 린이라는 호위기사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프란츠의 손에 남은 것은 방금 리시아가 쥐어주고 간 조그만 손수건뿐.

당황한 그 표정을 보며 옆에 있던 사내들이 웃었다.

 

“좋을 때군요.”

 

그런 기사 메튼의 말에 프란츠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에 올라탔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손을 흔들거리는 카엔을 뒤로 하고 몇 필의 말들이 투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바실리 공작령으로 향합니다!”

 

프란츠의 말에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몰래 숨어 엿듣던 남자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며칠째 황궁 입구에서 밤을 지새웠다.

 

“바실리 공작령이라···! 좋지.”

 

그렇게 엔디미온 또한 말 위에 올랐다.

 

“가자! 영혼의 주군을 모시러!”

 

그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말만 히힝거렸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 몸을 위한 마사지 상식

힐링 터치 마사지 시도